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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마을

<백두대간산마을>10.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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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35,144회 작성일 18-12-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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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해발 1천30)은 강원도 홍천군과 양양군을 잇는 높고 험한 고개다.마치 아홉마리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백두대간은 구룡령을 기점으로 남쪽으론 오대.동대산으로 내달리고 북쪽으론 설악을 거쳐 향로봉의 산마루와 맞닿는다.그래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대개 구룡령에서 잠시 지친 몸을 추스르고 힘을 비축하곤 한다.
고개가 높다보니 양쪽으로 펼쳐지는 고갯길도 길다.양양에서 홍천까지 이어지는 구룡령 고갯길은 총 1백20여리에 달한다.갈천리(양양군서면)는 구룡령 정상에서 양양으로 내려오는 고갯길 중턱쯤에 있다.해발 5백정도에 있는 전형적인 산마을로 깊고 깊은 계곡과 빼어난 산자락에 숨어 있다.
갈천이란 이름은 칡뿌리(갈근)에서 유래했다.옛날엔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 칡뿌리를 먹을때 계곡에 칡물이 떠날 날이 없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젠 옛말이다.
갈천리는 양양에 있는 산마을 가운데 잘사는 마을의 하나가 됐다.갈천리가 칡뿌리 마을이라는 이름을 뗄 수 있었던 데는 약수터가 크게 한 몫 했다.갈천약수는 예부터 전해 내려온 갈천 4보(四寶)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친다.갈천4보는 갈천약 수를 비롯해 삼석봉.오간세기.제집바위를 말한다.약수를 제외하고는 산과 바위와 관련돼 있다.갈천리 신동욱(46)씨는『갈천약수는 철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말했다.
탄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약수에 설탕이라도 넣으면「타닥」「타닥」 튀는 것이 눈에 보이고 물맛은 천연 사이다가 따로 없다.
갈천약수는 약수터에 닿기 위해 산길 1.5㎞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좋다.산길을 따라 땀을 흘리며 걸은 뒤 좋은 약수를 마시니 몸에 좋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갈천리에는 사람들이 약수터를 찾아 많이 온다.여름철에는 2만여명 정도가 몰린다.약수터 근처에 건강을 빌며 쌓아 놓은 무수한 돌무더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는지 짐작케 해준다.민박하며 몇 달씩 약수를 먹는 사람들도 수 십명에 달한다.
갈천약수는 용출량도 많다.15분이면 약수 서 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갈천리에서 가장 값진 것은「산골 인심」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방값이나 음식값이 싼데 놀란다.4인용 방 하나에 1만원이다.8명까지는 2만원이다.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에서 산메기를 잡을 수도 있는데 낚싯대는 공짜로 빌려준다.매운탕에 넣을 양념이나 그릇도 그냥 준다.낚시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잡은 메기를 살 수 있는데 5명이 너끈히 먹을 수 있는 양(15마리)도 1만원이면 족하다.
조금 유명세를 타다보면 바가지를 씌울법도 한데 그런 비뚤어진 상혼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약수만을 보러 오는게 아닙니다.산골 인심도 느껴보려는 거죠.1년 장사하고 말 것도 아닌데 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습니다.』마을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갈천리에서 양양읍쪽으로 가다보면 도로 옆으로 미천골이 나온다.미천골은 울창한 삼림과 오염되지 않은 계곡으로 유명하다.골짜기를 감상하며 조금 오르다보면 미천골 자연휴양림이 나온다.휴양림안에는 예부터 심마니들에게 신령스러운 물로 알려 진 불바라기약수가 있다.야영장 2개소,산막,자연관찰원,삼림욕장 등을 갖추고 있다.근처에 토종꿀을 치는 집이 많은데 즉석에서 꿀을 살 수도 있다.
미천골엔 804년 순응법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선림원터가 있다. 갈천리에서는 산메기탕을 권할 만하다.갈천리에서 나는 산메기는 마을 주위를 흐르는 계곡에서 직접 잡은 것으로 신선도가 뛰어나고 맛이 좋다.미니슈퍼(671-8249).약수가든(672-8411).갈촌약수기와집(672-0889).갈촌가든( 672-0896)에서 모두 산메기탕을 먹을 수 있다(지역번호는 모두0396).

<산마을>양양군 갈천리 산수필가 황강연씨
갈천리에 사는 황강연(37.사진)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산 수필가」로 불린다.
딱이 그런 분야가 있을리야 없지만 그가 산골사람과 자연을 주제로 한 글을 많이 쓰고 이 글들을 모아 책을 내다보니 그렇게 불린다. 갈천리는 그에게 두번째 삶을 시작하게 해준 곳이다.
그는 7년전 간경화로 거의 사망선고를 받았을 때 갈천리를 찾았다.죽기 전에 그토록 좋아했던 강원도 오지마을에서 한번 살아보자는 각오였다.묘자리로 쓴다는 생각으로 밭 2천평도 샀다.
『무엇이 내 건강을 좋게 했는 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요.매일 먹는 갈천약수,적당한 운동,식이요법 혹은 신앙생활 모두가 나름대로 도움이 됐을 겁니다.어쩌면 병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죠.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살아있고 행복하다는 겁니다.』 그는 산골생활의 단상들을 5년전부터 글로 쓰기 시작했다.그 글들을 모아 지난 92년 『산속의 피아니스트』라는 수필집을 출간했다.그는 그 해 월간 한맥문학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타기도 했다.지방신문과 잡지에도 고정적으로 글을 싣고 있다.
『아직 멀었어요.산골사람들의 생활을 다른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산골사람이 돼야 하는데 아직 모자란 것 같아요.올 가을께 「산속의 피아니스트」 2,3권을 출간하려고 합니다.』 갈천리에 들어올 때 갓난아기였던 아들 인수는 올해 갈천분교에 입학했다.인수는 갈천분교의 유일한 신입생으로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현재 감자.옥수수를 재배하고 토종꿀을 치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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