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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산마을>11.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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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36,396회 작성일 18-12-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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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치리(法水峙里.강원도 양양군 현북면)는 양양에서 최고의 오지(奧地)로 손꼽힌다.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하조대에서 어성전리까지 간 뒤 이곳에서 산길 30여리를 달려가야 법수치리가 나온다.
법수치리가 오지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마을에 차(車)가 많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17가구에 차는 24대나 된다.이곳에선 차가 없으면 움직이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법수치리의 계곡은 연어로 유명한 남대천의 발원지다.법수치란 이름도계곡물이 마치 불가(佛家)의 법수(法水)를 뿜어내는 것 같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오대산 자락에 숨죽인 듯 들어앉아 수 백년을 조용히 살아온 산골마을 법수치리가 요즘 무척 바빠졌다.
온 마을사람들이 표고버섯.장뇌를 재배하는데 눈코 뜰 새 없기 때문이다.
예부터 표고버섯은 양양,특히 법수치 인근에서 나는 것을 최고로 쳤다.표고재배는 낮은 곳에서도 안되지만 너무 높은 곳에서 도질이 떨어진다.그래서 해발 4백여쯤에 있는 법수치는 일단 지형부터 적합하다.
버섯 균을 심는 나무(표고목)는 굴참나무나 물참나무을 쓴다.
굴참나무는 생산량은 적지만 질이 뛰어나고,물참나무는 생산량은 많은 대신 질이 다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그래서 표고버섯을 재배할 땐 「생산량」과 「품질」이라는 두마리 토끼 를 다 잡기위해 통상 두 가지 나무를 섞어 사용한다.
종균을 심는 나무는 횡성 등지에서 가져온다.이 나무를 전기톱으로 1~120㎝ 정도 길이로 자른 뒤 이곳에 홈을 15㎝ 간격으로 판다.이런 줄을 나무를 빙둘러 다섯 개 만든다.종균은 톱밥에 섞어 표고목의 홈에 넣는다.그 다음에 스티로 폴로 구멍을 막는다.잡균이나 빗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표고버섯은 잔 손이 많이 간다.눈.비를 맞아도 안되고 직사광선을 쬐도 좋지 않다.가장 어려운 작업은 표고목을 돌려놓는 일이다.표고목을 그대로 두면 버섯은 땅에 가까운 곳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이를 돌려 골고루 잘 자라게 해야 한다.이때 나무 끝과 끝을 망치로 두드려 주어야 한다.충격을 주어야 버섯이 잘 자라는데 이때에도 힘의 강약이 중요하다.
이렇게 품을 들여도 1년안에 수확이 불가능하다.4월에 심으면 그 이듬해 가을철이 돼야만 출하할 수 있다.
『법수치 표고버섯에는 버섯머리가 거북 등처럼 갈라진 「화고」가 유난히 많아요.화고는 표고버섯 가운데 최상품으로 쳐줍니다.
』 법수치 이장 탁주해(45)씨의 자랑이다.
현재 법수치는 15만자루의 표고목을 보유하고 있다.한자루에서 통상 6백에서 1㎏의 버섯이 나온다.
법수치에는 또 장뇌가 18만뿌리나 자라고 있다.장뇌는 사람이 재배한 산삼을 말한다.사람이 산에 산삼씨를 뿌려 일정기간이 지나면 수확한다.일정기간은 길게는 15년이 걸린다.진짜 산삼보다 약효가 떨어지지만 인삼보다는 뛰어나다.가격도 인삼의 10배를 웃돈다. 든든한 살림밑천이 마을 주위 산과 밭에서 자라고 있어선 지 요즘 법수치 사람들은 웃음이 많아졌다.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볼거리 먹거리
법수치리 근처에 작은 절 용화사가 있다.깊은 계곡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지만 독실한 불교신자들에게는 상당히 알려져 있다. 법수치리는 산과 계곡 자체가 가장 큰 볼거리다.
오대산.응복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은 법수치리와 어성전리를 거쳐 남대천으로 흘러 들어간다.빼어난 경치가 많다고 해 예부터 법수치와 어성전에는 「십경(十景)」이 회자돼 왔다.열 가지 절경을 말한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낙조와 어울리는 「화등낙조(花燈落照)」,냇가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바위인 「운문천석(雲文川石)」,노봉위에 비치는 밝은 달인 「노봉명월(露峰明月)」,높은 산에 겹겹이 싸여있는 구름의 아름다움인 「고적부운(高積浮雲) 」,맑은 물 속에 물고기가 뛰노는 「내천유어(內川遊魚)」등이 그것이다. 법수치리에는 음식점이 없다.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막국수.토종닭.민물매운탕을 해준다.송이철에는 송이구이를 먹을 수도 있다.이장댁(0396-672-1559)

<산사람>너와집서 50년 삶 김주기씨
법수치리에 사는 김주기(61.사진)씨는 50여년간을 너와집에서 살았다.
그는 너와집에서 태어나 10여년전 법수치리에 너와집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줄곧 그곳에서 생활했다.
평야지대에선 볏짚으로 지붕을 이었듯이 화전민들은 산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껍질과 나무판자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을 지었다.너와집에서 50여년을 살았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삶은 보통 사람들과 판이했다.
金씨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창으로 곰을 잡은 사람이다.40년전미천골에서다.1쯤 눈이 왔을 때 6명이 같이 가서 잡았다.
『선창꾼에겐 뱃살을 주고 후창꾼에겐 뒷다리를 주었어.웅담? 웅담은 나눠 가졌지.』 귀하다는 송이를 장아찌로 만들어 먹고 술을 담가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산간오지에서 산 덕분이었다.
그러나 산골생활은 좋은 일보다 불편한 것이 더 많다.논농사는 하지 않아 쌀밥은 별로 먹어보지 못했다고 한다.힘들게 수확한 잡곡을 소금과 바꾸기 위해 주문진장에 가는데 2박3일은 꼬박 잡아야 했다.
어성전에서 망재를 넘어 상월천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장을 본다.돌아올 땐 역순으로 하룻밤을 더 자고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장뇌를 근처 산에 심었다.장뇌는 15년은지나야 약효가 제대로 나온다.
『살아선 장뇌 덕을 못 볼지도 모르겠어.하지만 어때.자식이나 손자가 수확할 수 있으면 되지.』 풍족하진 않지만 느긋해질 수 있다는 것.그것은 산골생활이 주는 또 하나의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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